2009년 06월 09일
방명록
# by | 2009/06/09 09:58 | 일상 | 트랙백 | 덧글(26)
# by | 2008/10/07 17:22 | Economics | 트랙백 | 덧글(0)
남자는 꿈을 꾼다. 영화 <밝은 미래>의 니무라 (오다기리 죠)는 늘 꿈을 꾸었다. 꿈 속에는 미래가 보였고 그 미래는 언제나 밝았다. 그래서 그는 잠자는 걸 좋아했다. 다른 남자도 꿈을 꾼다. 영화 <비몽>의 진(오다기리 죠)은 꿈 속에서 헤어진 연인을 만난다. 그 재회는 언제나 벅차고 격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다. 자신의 꿈이 누군가의 현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남자는 이제 꿈을 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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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란(이나영)이 그렇게 꿈과 현실을 나눠가지 듯, 오다기리 죠가 배우라는 직업에 눈을 뜬 이후 관객들은 꿈 같은 10년을 보냈다. 감독을 하려다 덜컥 배우 클래스로 들어간 운명 같은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99년 <쥬바쿠>부터 2008년 <비몽>까지 30편 가까운 영화에, <사토라레>, <시효경찰>등 16편이 넘는 TV 드라마에 그야말로 릴레이 계주를 이어간 필모그래피였다. 그는 그리워하기 전에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고, 익숙해질라치면 몸을 틀어 사라졌다. 이 배우의 품은 그렇게 헤펐지만 한 번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파키스탄 남자, 미국 여자, 그리고 일본 남자의 동행을 그린 로드무비, <빅 리버>에서 오다기리 조는 서부의 사막, 그 먼지 나는 도로 위에 눕는다. 리버 피닉스의 여린 듯 반항기 서린 얼굴, 제임스 딘 처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린 채 아리조나의 길 위에 선 이 젊은이의 모습은 그렇게 잭 케루악의 피조물들과 닮아있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든 배우가 청춘의 표정을 품어내지는 못한다.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를 세계관객들에게 처음 각인시켰던 영화이자 “스스로 배우라는 자각을 안겨준 첫 작품”이었던 <밝은 미래>는 극 중 두 남자의 관계가 영화 밖 현실과 묘하게 닮아있는 영화였다. 일본 영화계에서 청춘의 심볼로, 사색하는 배우로 자리 잡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존재감을 이을 배우로서 오다기리 죠는 유일한 적자이자 형제였다. 그렇게 영화에서 아리타(아사노 타다노부)가 마지막 남긴 “가라!” 는 메시지는 마치 오다기리 죠에게 내려진 신호탄처럼 그의 지난 10년을 다채롭고 박진감 넘치게 채워냈다. 아사노 타다노부가 가진 마이너 한 취향, 엉뚱한 청춘의 감성을 이어가는 동시에, 오다기리 죠는 그만의 대중적인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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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랑 호흡이 잘 맞던데… 질투 나서 혼났어…. 형이 너네 집에 간 적 있어?”
“아.. 아니 없어요”
“그럼 나는 가도 돼?”
순진한 시골처녀의 가슴이 세차게 흔들린다. 이 나쁜 남자. 영화 <유레루>에서 오다기리 죠는 적당히 타락하고 적당히 능청맞고 적당히 무책임한 “도쿄의 매연으로 마음까지 탁해진” 도시의 남자였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의 여자에게도 형에게도 그는 “모든 것을 빼앗기만” 한다. 그러나 오다기리 죠는 이 화려한 도시와 등을 맞댄 외로움 역시 가장 깊게 이해하고 있는 배우다. 굳이 이혼한 홀어머니 아래서 “하루 일과표를 그리듯 일상을 시츄에이션 놀이처럼 채웠던” 외아들의 유년기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그는 아사노 타다노부의 강인함과 쓰마부키 사토시의 천진함, 그 중간쯤에 위치한 외로움을 아는 눈을 가졌다. 가족과의 추억이 남긴 필름을 보며 오열하던 <유레루>에서, 엄마를 떠나 보내던 <도쿄타워>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더 이상 살고 싶어지지 않아” 라며 눈물짓던 <메종 드 히미코>에서 그는 도시인의 절제보다는 외로운 자의 감성에 손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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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거지 옷을 입어도, 삐삐머리를 하고 등장한다 해도 오다기리 죠는 도저히 가려질 수 없는 미모의 남자다. <비몽>에서 이나영과의 투 샷을 거뜬히 이겨내는 작은 얼굴과 상상이상으로 넓은 어깨, 균형 잡힌 신체비율은 176cm라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를 장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들 정도다. 또한 그는 ‘배바지’를 민망함을 넘어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시킨 ‘백만 불짜리 엉덩이’의 소유자이며, 영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서 마법의 거울이 오랜 주인을 버리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남자”라고 칭한 사람이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요양소 ‘마담’ 히미코의 스폰서였던 백발노인의 지갑을 “너같이 아름다운 청년이 요양소를 잇게 될지는 몰랐다”는 찬사와 함께 열게 만들고, 자신들을 게이라고 놀리던 한 초등학생의 뺨을 때리는 순간, 소년은 그만 그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비몽>에서 맹렬히 전각을 파 내려가던 뒤 모습, 툭툭, 정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던 잘 발달된 어깨 근육은 빛바랜 풀색의 스웨터를 무심히 비집고 나온다. 그의 미모와 연기에 눈과 귀가 먼 관객들은 영화 <무시시>의 ‘깅코’(오다기리 죠)의 처방으로도 손 쓸 수 없을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성에게는 사랑을, 동성에게는 동경을 부르는 오다기리 죠의 태도를, 걸음걸이를, 옷 입는 방법을, 스타일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일본과 한국에 급속도로 생겨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는 눈치 보지 않고, 부자연스럽지 않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는데 말이다.도시의 수맥을 따라 홀로 헤엄치는 눈부신 해파리. 매끄러움 속에 독을 품은 부정형(不定形)의 피조물. 오다기리 죠, 그가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잠이 든다. 그는 지금 우리가 꾸는 가장 황홀한 꿈이다.
# by | 2008/10/02 11:58 | 일상 | 트랙백 | 덧글(4)
# by | 2008/10/02 11:12 | 일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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