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여기 오시는 분 손!!!

by 유니 | 2009/06/09 09:58 | 일상 | 트랙백 | 덧글(26)

펌. [국제기구의 젊은 한국인들] 전쟁터도 희생도 두렵지 않다면 도전, 도전하세요! (주간조선)

42개 국제기구에 한국인 300여명… 고위직도 늘어
외교통상부 유엔과에 따르면 2008년 4월 현재 42개 국제기구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수가 300명 선이라고 한다. 17개 국제기구에 139명이 진출했던 1992년에 비하면 10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를 단순히 국제무대로 진출한 한국인의 수적 증가로만 볼 게 아니다.

‘국제공무원의 수장(首長)’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김두영 국제해양법재판소 사무차장, 조원일 아시아유럽재단 사무차장,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등 선출직 고위 인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들 선배의 뒤를 이은 후배들의 진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학생들 문의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국제기구 진출 세미나에 200여명이 몰린 데 이어 지난 5월 15일 연세대에서 열린 국제기구 인사담당자들의 안내 강좌에도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이들은 목표로 삼은 국제기구에서 필요로 하는 이론 공부와 현장 경험을 쌓으며 실력을 다지고 있다. ‘국제무대로 뻗어나가자’는 막연한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국제 고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국제기구 진출을 위한 ‘KISS’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유재건 국제의원연맹 집행위원은 “세계 무대에서 뛴다는 것은 개인적인 성취일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볼 때에도 핵심 자산(資産) 양성”이라며 “개인은 스스로 경쟁력을 쌓아가고, 정부가 이를 시스템으로 지원하며 국제무대로의 진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에 진출하기 위한 과정이나 시험 제도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유엔본부를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유엔아동기금(UNICEF)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인재들로부터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 일러스트 유재일
최성아 유엔본부 대변인실 아시아담당부대변인보
기자 거쳐 외교통상부 특채… 실력 인정받아 반기문팀 합류
중국·네팔… 하루 건너 대형사고, 잠잘 때도 인터넷 끼고 자


지난 5월 12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유엔본부 기자회견에서 “중국 남서부 지진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유엔은 구호와 재건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5월 2일 미얀마의 사이클론으로 10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가 나온 데 이어 아시아 지역에서 연이어 대형 재난사고가 터지고 있다. 유엔본부 대변인실은 현지 상황을 체크하고 대책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아시아 지역 담당인 최성아(36) 부대변인보는 요즘 하루 두세 시간도 못 자며 일하고 있다.

유엔본부 대변인실엔 대변인을 비롯해 6명의 지역별 부대변인보가 있다. 외교통상부 소속 서기관인 그는 2007년 1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최씨는 사건 현장에 있는 UN 대표부 및 각종 산하기구와 연락을 취하며 현장 상황을 파악해 시시각각 속보를 전하고 있다. 브리핑을 하고 반 총장의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대책 마련팀에 속해 있다.
그가 평소 잠을 잘 때에도 끼고 자는 인터넷 겸용 휴대폰 ‘블랙베리’는 몇 초마다 한 번씩 울린다. 이메일이 속속 도착하고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다.

대변인실에서 유일한 아시아 지역 담당인 그는 대선이나 폭동 같은 정치적 이슈에서부터 태풍 같은 자연재해까지 모두 챙겨야 한다. 한반도가 속한 동북아 지역은 북한 인권문제를 제외하곤 비교적 조용한 반면, 서남·동남아 지역에선 쉴 새 없이 문제가 터진다고 한다. 최근 있은 큰 이슈로는 지난해 동티모르 대선, 지난 4월 있은 네팔의 총선을 꼽을 수 있다.

최성아씨는 “다양한 국제 뉴스를 다루고 대처하기 위해선 현안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며 “지금 벌어지는 사안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종교·정치 문제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외신기자 출신으로 2005년 초 외교통상부에 특채로 입사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2006년 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인수팀에 합류했다. 최씨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동시에 지구촌 시민이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며 “세계 경제대국 11위에 걸맞게 국가 안의 문제뿐 아니라 국가 밖 문제들에도 관심을 갖고 남을 돕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강중식 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국
IMF 때 한국 방문한 기구 사람들 보며 꿈 키워
국제사회 흐름 한눈에… 북한 경제 돕고 싶어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 소속인 강중식(32)씨는 박사과정을 마친 뒤인 지난해 9월 IMF에 입사했다. 입사 후 첫 6개월간은 ‘몽골팀’ 소속으로, 국제수지나 대외부채 관련한 정책 협의 및 조언 업무를 맡았다. 요즘은 ‘방글라데시팀’에서 실물·통화 부문을 맡고 있으면서 오는 7월에 있을 IMF 연례정책협의 준비팀에서 일하고 있다.

강중식씨는 학부시절(서울대 경제학부)부터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의 구제금융에 관심이 많았다. 강씨는 “그때 한국에 들어왔던 IMF 사람들은 누구였고, 구제 금융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지원됐고, 그들의 정책 조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며 “나도 나중에 저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국제거시경제와 국제금융을 세부전공으로 택하고 IMF와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인턴십 과정을 밟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강중식씨는 “각 나라들과의 정책 협의를 통해 저희의 의견과 조언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올바른 경제 운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 같다”며 “국제기구에서 일하다보니 국제 사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전혀 관심을 갖지 못했던 나라까지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경제 전문가가 돼 장기적으론 국내 연구소나 학교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한다. 특히 “북한이 IMF나 세계은행에 가입해서 북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정책 지원이 시작되면 북한 경제 회복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고 했다.

▲ 유엔본부 대변인실 소속의 최성아 서기관. /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의 박재현씨가 우간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사무소에서 일할 때. /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 소속의 강중식씨(왼쪽).

이수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예산편성 선임담당관
JPO 1기 출신, 방글라데시 등 난민과 함께 10년
납치·말라리아… 온몸으로 뛰며 위험에 맞서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금융·행정관리국에서 일하는 이수진(38)씨는 이곳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직급도 프로그램 예산편성 선임담당관이다. 

연세대 89학번인 그는 1996년 외교통상부가 처음 시행한 JPO (Junior Professional Officer·수습) 과정을 통해 호주 캔버라 UNHCR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에 있는 난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UNHCR은 지원과 조정을 담당하는 다른 유엔 기구와 달리 난민들과 직접 부딪치며 현장에서 몸으로 뛰어야 하는 일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이씨는 “유괴나 납치 같은 안전문제뿐 아니라 말라리아나 등기열 같은 문제 때문에 가족 없이 혼자 부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에 대한 자기 각오와 희생 정신이 없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 행복해하는 난민들을 보면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는지 모른다고 한다.
 
이혜원 유엔아동기금 주 유럽연합 담당관
 
JPO 통해 진출… 경험 담은 책도 출간
“엘리트라면 일해볼 만한 매력적인 직장”


최근 국제기구 근무 희망자를 위한 ‘나는 유엔으로 간다’라는 책을 펴낸 이혜원(30)씨는 유엔아동기금(UNICEF) 브뤼셀 지역본부에서 주 유럽연합(EU)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인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제기구는 젊은 엘리트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매력적인 직장”이라며 “JPO 준비를 할 때부터 유엔 기구에 근무하게 될 때까지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아서 국제기구에 지원하려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책을 펴내게 됐다”고 한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과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협력을 전공한 그는 JPO 과정(2006년) 출신이다.


김새려 유엔아동기금 후원자 관련 전문가
어린이에 관심 많아… JPO 통해 유니세프와 인연
내 아이 낳아보니 꼭 필요한 일, 지난 4월 복직


유엔아동기금 뉴욕 본사에서 일하는 김새려(33)씨는 모빌리제이션부 소속으로 각국의 정부나 공공기관 간의 파트너십을 개발하고 자원을 동원하는 일을 한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도쿄와 뉴욕, 델리의 유니세프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베이징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한 김씨는 어린이 관련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유니세프와 인연을 맺은 건 JPO 과정에 2000년 지원해 합격하면서부터다.
2005년 말부터 최근까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지난 4월 유니세프 본사로 복직했다. 17개월짜리 딸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아이를 낳은 뒤 이 일이 더 피부로 다가온다”며 “남편과 가정의 후원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 미국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UN총회. / 지난해 11월 서울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OECD채용정책 설명회. photo 조선일보 DB

박재현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직원 
국제기구 인턴 경력 인정받아 법무부 특채
스리랑카 근무 땐 반군 대상 인권교육도


국제기구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은 뒤, 국내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 UNHCR에서 3년간 일한 뒤, 사무관 특채시험에 합격해 지난해 8월부터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재현(34)씨 경우다. 2002년 JPO 과정에 합격해 2년간 스리랑카 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한 박씨는 2006년부터 1년간 우간다 사무소에서 정식 직원으로 일했다.

박씨는 “스리랑카에서 근무할 땐 내전이 휴전하던 시기였다”며 “타밀 반군 점령지에서 귀환한 난민을 대상으로 인권 모니터링을 하고 생계 지원을 하는가 하면, 반군 및 정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도 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부터 난민이나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외국인 정책 관련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


| 국제기구 |
3개국 이상의 국가·단체가 설립한
국제법상 독립적 조직체


‘국제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는 3개국 이상의 국가가 설립한 기구 또는 3개국 이상에 걸쳐있는 단체나 개인들이 설립한 기구를 통칭한다. 일정한 목적하에 국제법상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자체 기관에 의해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조직체로 정의된다.

국제기구를 대표하는 UN은 UN 총회, UN 안보리,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 UN 사무국 등을 일컫는다. UN 총회 아래에는 군축·안보, 경제·개발, 인권·사회, PKO, 행정·예산, 법 관련 등 6개의 위원회가 있다. 국제기구에 속한 대부분의 위원회들은 이처럼 UN 총회나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있다.

이 밖에 광의의 개념으로 본 UN은 UN 전문(독립)기구와 UN 보조기구를 모두 포함한다. 유엔개발계획(UNDP) 같은 보조기구들과 독립기구로서 UN에 협력하며 경제사회이사회 조정을 받는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전문기구들이다.

국제기구는 이 같은 UN 전문·보조기구 외에 국제적십자연맹(IFRC)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정부 간 기구까지 포함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전문직(P)만 5개 등급
한 등급 승진에 4~7년 걸려

직원 채용은 직원이 사임했거나 기한부 임용 직원의 임기가 종료된 경우 혹은 새로운 보직이 생겨나면서 공석이 발생했을 때 이뤄진다. 통상적으로 P2에서 P4까지는 직급 승진당 4~5년이 걸린다. P4에서 P5까지는 5~7년, P5~D1까지는 약 1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통·번역 직원은 대개 P1 등급으로 분류된다. 

국제기구에 근무할 수 있는 자격 요건 중엔 ‘국적이 한 개’여야 한다는 사항이 있으므로 이중국적자는 국적을 단일화해야 한다. 국제공무원이 될 경우 정년 퇴직(62세) 때까지 신분이 보장되며 5년 이상 근무하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제기구 공무원들이 말하는   “이렇게 준비하라”

국제기구 근무 요건의 제1 요소, 언어 능력을 키워라.
국제기구 공식 언어인 영어나 프랑스어에 능통해야 하고 기타 유엔공용어인 러시아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취업할 때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어학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별도의 시험은 없지만 장기간의 인터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하고 싶은 국제기구를 우선 정한 뒤 그에 맞게 준비하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이수진 선임담당관은 “일하고 싶은 국제기구를 정한 뒤 그에 맞는 학교 교육을 받고 현장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의 강중식씨도 “해당 국제기구 홈페이지나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통해 근무하는 데 필요한 학력과 능력을 확인해 실력을 갖춰나가는 게 도움이 됐다”고 한다.


■현장 경험을 쌓아라.
국제봉사 단체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것도 국제기구 진출에 도움이 된다. UNHCR 출신인 박재현씨는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대학 시절부터 북한인권시민연합 같은 NGO 기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게 국제기구 근무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라.
유엔본부 대변인실의 최성아 부대변인보는 “국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의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재현씨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수치화된 어학 능력이 아닌, 식견을 갖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희생 정신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
유니세프 뉴욕 본부에 있는 김새려씨는 “다른 사람을 도우며 섬기겠다는 열정을 갖고 일하면 좋겠다”면서 “유니세프의 한 직원이 ‘이런 일을 하게 해줘서 감사한데 월급까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느냐’고 말했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국제기구에 들어온 뒤에도 자기개발을 계속하라.
국제기구에 입사한 뒤에도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수진 UNHCR 선임담당관은 “다른 후보들이 갖지 못한 나만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예산 문제를 다루는 저 같은 경우, 금융 소프트웨어 같은 금융 관련 지식을 계속 쌓고 있다”고 했다.


국제기구에 진출 하려면


■JPO(초급 전문가·Junior Professional Officer) 과정
정부가 선발해 파견… 정규직 전환 늘면서 경쟁 높아져

자국 국적의 인재를 정부가 선발해 국제기구 직원으로 파견하고, 국제기구 진출을 지원하는 제도. 외교통상부는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한 1996년부터 2008년 4월 현재까지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10여개의 국제기구에 53명을 파견했다. 파견 근무 기간이 끝난 44명 중 37명이 정규직으로 진출했다.

JPO 과정을 통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높은 경쟁률을 보여 ‘국제 고시’라고 불린다. 2007년의 경우, 5명 모집에 187명이 지원해 3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 자격은 만 30세 미만의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최종 합격 발표 전까지 학위 소지하면 됨)에게 주어진다. 다만 남성 군필자의 경우, 군 복무기간에 따라 33세까지 지원할 수 있다.

1차 시험은 TEPS 930점 이상일 때 합격할 수 있고 2차 시험은 국문 면접, 영어 작문과 영어 면접으로 이뤄진다. JPO로 국제기구에 처음 배치되면 P-2급으로 인정받고, JPO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받게 된다. 한 해 받는 급여는 5만8000달러 선으로 알려져 있다.

파견 비용은 1인당 연 평균 9만~14만달러로 해당 국가가 부담한다.


■국가별 경쟁채용시험
(NCRE·National Competitive Recruitment Examination)
진출 인원 적은 나라의 국민 대상… 주로 유엔사무국 근무


유엔분담금에 비해 유엔사무국 진출 인원이 적은 나라의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유엔 직원채용 시험. 유엔사무국에 취직하기 위한 시험이라 보면 된다. 때문에 유엔개발계획과 유엔아동기금 같은 유엔 보조기구는 취직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신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OHCHR) 등에 입사할 수 있다.

이 시험에 합격해 채용된 뒤 대개 2년이 지나면 신분이 안정되며, 다른 기관에서 일할 기회도 비교적 쉽게 주어지는 편이다. 지원 자격은 만 32세 이하로, 공고된 시험 분야 관련 학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라야 한다. 시험은 1차 서류전형,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시험으로 이뤄지는데 영어와 프랑스어 중 적어도 한 가지 언어로 업무 수행이 가능해야 한다.

1992년 이래 총 37명이 합격했고 26명이 채용됐으며 현재 23명이 근무 중이다.(2008년도 시험은 2월 26일 치러졌다.) 시험 문제는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엔이 개입해 자주 국가가 된 다섯 나라를 쓰시오. 이 과정에서 유엔이 행한 역할을 평가하시오’ 같은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YPP(Young Professional Program)
국가가 추천하고 UN서 선발… 수습기간 거쳐 정규 채용도


국제기구에 진출한 사람이 없거나 진출한 사람이 적은 회원국의 국민을 정부가 추천해 선발하는 제도. 일정기간의 실무 수습기간(YP)을 거쳐 근무 실적이 좋으면 정규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면에서 JPO 과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파견하는 국가가 선발권을 갖는 JPO와 달리 YPP는 국제기구가 선발 업무를 맡는다. YPP를 통해 유네스코(UNESCO), 유니세프(UNICEF), 세계은행(World Bank) 등으로 진출할 수 있다.


■공석 응모(vacancy announcement)
비정기적으로 선출… 해당기구 홈페이지 통해 공시


비정기적인 국제기구 진출 방법으로 국제기구 채용정보 홈페이지나 해당 기구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된다. 참고: www.unrecruit.go.kr

by 유니 | 2008/10/07 17:22 | Economics | 트랙백 | 덧글(0)

사랑해요, 오다 죠 ♡

가장 맘에 드는 건, 무심한 듯한 표정.



매거진t

[VIP] 오다기리 죠│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백과사전

기사입력 2008-09-30 17:00 기사원문보기

남자는 꿈을 꾼다. 영화 <밝은 미래>의 니무라 (오다기리 죠)는 늘 꿈을 꾸었다. 꿈 속에는 미래가 보였고 그 미래는 언제나 밝았다. 그래서 그는 잠자는 걸 좋아했다. 다른 남자도 꿈을 꾼다. 영화 <비몽>의 진(오다기리 죠)은 꿈 속에서 헤어진 연인을 만난다. 그 재회는 언제나 벅차고 격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다. 자신의 꿈이 누군가의 현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남자는 이제 꿈을 꿀 수 없다.

온 몸으로 뿜어내는 청춘의 표정

<빅 리버>(왼쪽)에서 청춘의 얼굴을 보여준 그는 배우로써의 자각을 <밝은 미래>로 가지게 됐다.

진과 란(이나영)이 그렇게 꿈과 현실을 나눠가지 듯, 오다기리 죠가 배우라는 직업에 눈을 뜬 이후 관객들은 꿈 같은 10년을 보냈다. 감독을 하려다 덜컥 배우 클래스로 들어간 운명 같은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99년 <쥬바쿠>부터 2008년 <비몽>까지 30편 가까운 영화에, <사토라레>, <시효경찰>등 16편이 넘는 TV 드라마에 그야말로 릴레이 계주를 이어간 필모그래피였다. 그는 그리워하기 전에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고, 익숙해질라치면 몸을 틀어 사라졌다. 이 배우의 품은 그렇게 헤펐지만 한 번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파키스탄 남자, 미국 여자, 그리고 일본 남자의 동행을 그린 로드무비, <빅 리버>에서 오다기리 조는 서부의 사막, 그 먼지 나는 도로 위에 눕는다. 리버 피닉스의 여린 듯 반항기 서린 얼굴, 제임스 딘 처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린 채 아리조나의 길 위에 선 이 젊은이의 모습은 그렇게 잭 케루악의 피조물들과 닮아있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든 배우가 청춘의 표정을 품어내지는 못한다.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를 세계관객들에게 처음 각인시켰던 영화이자 “스스로 배우라는 자각을 안겨준 첫 작품”이었던 <밝은 미래>는 극 중 두 남자의 관계가 영화 밖 현실과 묘하게 닮아있는 영화였다. 일본 영화계에서 청춘의 심볼로, 사색하는 배우로 자리 잡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존재감을 이을 배우로서 오다기리 죠는 유일한 적자이자 형제였다. 그렇게 영화에서 아리타(아사노 타다노부)가 마지막 남긴 “가라!” 는 메시지는 마치 오다기리 죠에게 내려진 신호탄처럼 그의 지난 10년을 다채롭고 박진감 넘치게 채워냈다. 아사노 타다노부가 가진 마이너 한 취향, 엉뚱한 청춘의 감성을 이어가는 동시에, 오다기리 죠는 그만의 대중적인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강인함과 천진함이 공존하는 외로운 눈

<유레루>(왼쪽)와 <도쿄타워>에서 처럼 그는 외로운 자의 감성을 잘 알고 있는 배우다.

“형이랑 호흡이 잘 맞던데… 질투 나서 혼났어…. 형이 너네 집에 간 적 있어?”

“아.. 아니 없어요”

“그럼 나는 가도 돼?”

순진한 시골처녀의 가슴이 세차게 흔들린다. 이 나쁜 남자. 영화 <유레루>에서 오다기리 죠는 적당히 타락하고 적당히 능청맞고 적당히 무책임한 “도쿄의 매연으로 마음까지 탁해진” 도시의 남자였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의 여자에게도 형에게도 그는 “모든 것을 빼앗기만” 한다. 그러나 오다기리 죠는 이 화려한 도시와 등을 맞댄 외로움 역시 가장 깊게 이해하고 있는 배우다. 굳이 이혼한 홀어머니 아래서 “하루 일과표를 그리듯 일상을 시츄에이션 놀이처럼 채웠던” 외아들의 유년기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그는 아사노 타다노부의 강인함과 쓰마부키 사토시의 천진함, 그 중간쯤에 위치한 외로움을 아는 눈을 가졌다. 가족과의 추억이 남긴 필름을 보며 오열하던 <유레루>에서, 엄마를 떠나 보내던 <도쿄타워>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더 이상 살고 싶어지지 않아” 라며 눈물짓던 <메종 드 히미코>에서 그는 도시인의 절제보다는 외로운 자의 감성에 손을 들어준다.

깨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꿈, 오다기리 죠

제 아무리 거지 옷을 입어도, 삐삐머리를 하고 등장한다 해도 오다기리 죠는 도저히 가려질 수 없는 미모의 남자다. <비몽>에서 이나영과의 투 샷을 거뜬히 이겨내는 작은 얼굴과 상상이상으로 넓은 어깨, 균형 잡힌 신체비율은 176cm라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를 장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들 정도다. 또한 그는 ‘배바지’를 민망함을 넘어 아름다움의 경지로 승화시킨 ‘백만 불짜리 엉덩이’의 소유자이며, 영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서 마법의 거울이 오랜 주인을 버리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남자”라고 칭한 사람이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요양소 ‘마담’ 히미코의 스폰서였던 백발노인의 지갑을 “너같이 아름다운 청년이 요양소를 잇게 될지는 몰랐다”는 찬사와 함께 열게 만들고, 자신들을 게이라고 놀리던 한 초등학생의 뺨을 때리는 순간, 소년은 그만 그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비몽>에서 맹렬히 전각을 파 내려가던 뒤 모습, 툭툭, 정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던 잘 발달된 어깨 근육은 빛바랜 풀색의 스웨터를 무심히 비집고 나온다. 그의 미모와 연기에 눈과 귀가 먼 관객들은 영화 <무시시>의 ‘깅코’(오다기리 죠)의 처방으로도 손 쓸 수 없을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성에게는 사랑을, 동성에게는 동경을 부르는 오다기리 죠의 태도를, 걸음걸이를, 옷 입는 방법을, 스타일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일본과 한국에 급속도로 생겨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는 눈치 보지 않고, 부자연스럽지 않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는데 말이다.도시의 수맥을 따라 홀로 헤엄치는 눈부신 해파리. 매끄러움 속에 독을 품은 부정형(不定形)의 피조물. 오다기리 죠, 그가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잠이 든다. 그는 지금 우리가 꾸는 가장 황홀한 꿈이다.

by 유니 | 2008/10/02 11:58 | 일상 | 트랙백 | 덧글(4)

흑흑

은행 와서도 발목 잡는 나의 전공 ㅠ

컴터 관련 헬프데스크 역할을 도맡는 것은 물론,
(여기까지는 그래도 뿌듯하니 오케이)
그나마도, 잘 해내면 본전,
못해내면, "넌 전산과면서 이게 대체 뭥미-_-?" 하는 표정을 견뎌내야 하는 것.


오늘도 하드웨어 관련 간단한 삽질 후
옆에 계시던 차장님 말씀,
"채윤희씨는 컴퓨터 속만 잘 아는 건가봐?"

꾸에에에에,
난 프로그램만 짰다구요.
물론, 컴터 주변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전산과의 당연한 몫이었겠지만 말이다.








에효, 그냥 만능이 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넋두리 일지도 ㅠㅠㅠㅠㅠㅠ

by 유니 | 2008/10/02 11:12 | 일상 | 트랙백 | 덧글(4)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